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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반응성 애착장애 아동(reactive attachment disorder)

 6세 9개월된 아동은 어머니의 직장 생활로 인해 출생 초기부터 취학 전까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놀이방에서만 보냈다고 한다. 언어 발달이 지체되고 사회성이 부족하여 약 3년 간 소아정신과 외래에서 치료를 받아 왔으며, 증상의 호전 여부를 확인 하기 위해 심리학적 평가가 의뢰되었다. KEDI-WISC 결과, 전체 지능은 보통 상 수준에 해당되었고, 현재는 언어 능력의 발달도 상당히 이루어져 보통 상 수준에 해당되었다(FSIA=105, VIQ=111, PIQ=96).

  HTP 검사 시 비교적 양호한 지적능력이나 연령에 비해 선의 처리가 불안정하고 전반적인 조직화 수준도 저조한바, 경미한 수준의 뇌기능 장애의 가능성이 의심된다. 관심 영역이 매우 제한되어 있고 자신의 주관적 경험에만 근거하여 표현하는 등 세상을 바라보고 접근하는 방식이 다분히 자기 중심적이고 사회적 상호 작용에 대한 관심도 부족한 면을 보이고 있다. 또한, 다른 사람이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자신만의 공상과 관련된 내용만을 그리는 점을 고려하면, 혼자만의 세계 속으로 위축되어 사회적 적응에 곤란을 겪고 때로는 내적 공상과 외부 현실 간의 구분에 혼동을 겪을 소지도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집 그림을 그릴 때, 우측 하단에 강아지 집을 먼저 그린 다음 아파트 건물을 그리는 등 사회적 상황에서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수행 양상 수준에서 벗어나 있다. 가정과 세상에 대한 지각이 친근하거나 우호적이지는 않아 보이며 적절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데 상당한 제약이 있어 보인다. 이에 따른 대인 관계의 불편감 또한 높은 수준에 이를 것으로 여겨진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가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강아지 집과 창문만 빼곡하게 늘어 선 아파트를 그린 점에서 자신을 보호해 주는 안전 기반으로서의 집에 대한 표상이 부재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창문의 묘사에서 보속증적 경향성이 시사되며, 이는 반응성 애착장애 아동들에게서 일반적으로 보이는 제한되고 협소한 흥미와 상동증적 행동 및 인지적 경직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나무 그림에서도 텔레비전에서 보았다며 백두산의 신간나무를 그리고 100살이기 때문에 잎과 가지는 모두 떨어진 상태이며, 앞으로 1,000살이 되면 죽을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집 그림과 마찬가지로 아동의 관심 영역이 제한되어 있고, 경험이나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학습이 이루어지기 보다는 TV 등 일방적인 채널을 통해 기계적으로 지식이 습득되었고, 사고 내용 또한 관습적 수준에서 벗어나 다분히 자폐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세상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통로인 가지를 제대로 그리지 못하는 점을 볼 때, 사회적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 기술이 부족하고 이에 대한 자신감도 낮아 아동 스스로 이를 의식적으로 인식할 수는 없으나 대인 관계 상황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이 심할 것으로 여겨진다. 종이를 모두 채울 정도로 나무 기둥을 넓고 크게 그린 점을 통해 사회적 상황으로부터 느껴지는 불안감을 과잉 보상하고자 하는 시도를 엿볼 수 있으나, 그러한 그림 특성은 아동이 심리-사회적으로 매우 미성숙하고 미분화되어 있는 점을 나타내주기도 한다. 아동은 어머니를 비롯한 타인과의 관계에서 안정을 얻고자 하는 욕구가 번번이 좌절되는 과정에서 깊은 우울감이나 무력감을 내면화해 왔을 소지가 많으며, 이는 나무가 앞으로 죽을 것이라는 아동의 설명을 통해서도 시사되고 있다.

   사람 그림 중 남자 그림에서는 '띠용이'를 머리에 하고 친구에게 보여주러 가는 아동 자신의 모습을 그렸고, 여자 그림에서는 음식을 갖다 주는 사람을 그렸는데 뾰족하게 쌓인 돌에 앉으려고 하다가 넘어진 모습으로 얼굴과 몸은 생략한 채 다리와 신발만 표현한 것이 아동의 좌절감과 슬픔을 생생하게 반영해주는 것 같았다. 그림은 종이 하단에 모두 몰려 있었고 땅에서부터 발, 몸통, 얼굴 순서로 사람을 그리는 모습을 통해 아동의 자폐적인 성향과 불안정한 정서 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 또, 앞서 그린 집이나 나무 그림에 비해 사람 그림에서는 공상이 활발하게 전개된 양상으로 대인 관계에서 느끼는 불편감을 보상하기 위해 혼자만의 생각 속으로 위축되는 경향을 보인다. 한편 37세의 여자라고 표현한 그림에서 아동과 아동 어머니와의 관계 양상이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생각되는데, 음식을 갖다 주는 사람이라는 설명에서 아동의 애정 및 의존에 대한 간절한 욕구가, 돌에 걸려 넘어져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 모습에서 아동에게는 아직 어머니에 대한 안정된 내적 표상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자신의 정서적 욕구를 좌절시키는 어머니에 대한 억압된 분노감이 자리잡고 있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KFD 가족화에서는 부모를 제외하고 아동과 아동의 동생이 물을 발사하고 있는 그림을 그렸고, 부모는 그리고 싶지 않다고 말하였다. 아동은 '나쁜놈 비키'라고 하며 물을 발사하고 있으며 '불로 공격해도 소용이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아동이 세상을 얼마나 부정적이고 위협적으로 표상하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으며, 상당부분이 부모와의 안정적인 애착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데 기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자신이 물로 둘러싸인 공간에 갇혀 있고 위축되어 있는 점을 고려할 때, 보호받을 수 있는 안온한 세상 속으로 숨고 싶은 아동의 욕구가 반영되어 있음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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