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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언어는 심리장애를 지닌 사람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있어 가장 주된 수단으로 개인의 의식을 외부세계로 실어 나르는 중요한 표현도구임에 틀림없지만, 종종 개인이 소통하고자 했던 느낌과 생각들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한계를 보이거나 개인의 내면을 왜곡하여 표현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특히 무의식을 표현하기에는 큰 제한이 있다.

  자신의 무의식을 표현하는 것뿐 아니라 타인의 무의식을 이해하고자 하는 경우에도 사실상 언어를 통해 접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므로 언어를 매개로 하는 객관적 심리진단 검사를 보완해 줄 수 있는 투사적 검사가 필요하다. 투사적검사에는 로르샤흐(Rorschach), 주제통각검사(TAT: Thematic Apperception Test), 집-나무-사람 검사(HTP: House-Tree-Person test)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간편하고 경제적이며, 개인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검사가 바로 투사적 그림검사(projective drawing test)라 할 수 있다.

1. 그림검사의 역사

 1) 지능 및 성격 평가도구로서 그림검사의 출현

  19세기 말 유럽에서는 정신장애 환자들의 그림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며 그림이 정신병리의 진단에 도움을 주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인식이 싹트기 시작하였고, 20세기 초에는 그 그림이 정신분열증과 같은 정신장애 진단을 확증해 줄 수 있을 만큼 타당성을 지닌다는 견해가 당대 학자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지게 되었다. 

  어느 시대이건 아동의 그림은 사람들의 마음을 매혹시키는 힘을 발휘해 왔지만, 아동의 그림에 대한 공식적인 연구는 20세기를 전후로 정신장애 환자들의 그림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프로이트와 융의 창조적인 저술들이 축적되는 가운데 아동심리발달에 관한 이론적, 경험적 연구들이 맞물리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스 프린존(Hans Prinzhorn)은 정신장애와 그림 간의 밀접한 관계를 경험적으로 입증하고자 유럽 전역에 걸쳐 정신병원 환자들로부터 5,000여점의 그림을 수집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정신장애자의 예술성(Artistry of the Mentally Ill, 1972년)"을 출판하였다. 이 자료는 정신장애 환자들의 그림이 재활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되었다.

  프로이트(Freud)와 융(Jung) 또한 예술적 표현과 정신세계 간의 관련성에 대한 인식을 확장시키는 데 많은 기여를 하였는데 두 사람 모두 예술과 상징, 성격 간의 관련성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프로이트는 개인이 갖는 어떤 이미지가 잊혀지거나 억압된 개인적 기억을 표상하는 것으로 보고 이러한 표상적 이미지로서의 상징은 꿈이나 예술적 표현을 통해 표출된다고 생각하였다. 한편, 융은 이미지를 보다 인류 보편적인 의미로 바라보았다는 점에서 프로이트와 구별될 수 있다.

  굳이너프(Goodenougn, 1926)는 그림의 특정한 측면들이 아동의 정신연령과 높은 상관을 보이기 때문에 지능 측정의 수단으로 충분히 쓰일 수 있다는 가정 아래, "Draw-A-Man(DAM)"이라는 그림검사를 개발하였다. 그 후 DAM 검사를 사용하던 중 그림검사가 성격 특질까지 드러내준다는 사실을 관찰하게 되었다.

  DAM 검사는 이후 벅(Buck, 1948)이나 마코버(Machover, 1949) 등에 의해 지지되었고 다양한 연구들에 힘입어 아동의 '사람 그림'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아동의 지각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수단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2) 투사적 그림검사의 발전

  투사적 그림검사는 사람이나 집, 나무와 같은 특정한 형상에 대한 그림은 개인의 성격, 지각, 태도를 반영해 준다는 가정에 기반하고 있는데, 가장 잘 알려진 투사적 그림검사 중의 하나가 벅(1948, 1966)의 'House-Tree-Person Test(HTP)'이다. 

  HTP는 벅이 개발하고 있었던 지능검사의 보조적인 수단으로 고안되었으나 이후 지능과 성격 모두를 측정하는 수단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벅은 집, 나무, 사람의 세 가지 주제가 어린 아동들에게도 매우 친숙하고 쉽게 그려질 수 있으며 무의식과 활동과 연상작용을 활성화하는 상징성이 풍부한 소재라는 점에서 채택하였다고 한다.

  이후 해머(Hammer, 1958)는 임상적 평가와 미술치료, 치료 전후 효과 분석에서 HTP의 유용성을 검토한 연구들을 정리하여 정교하게 발전시켰고, 마코버(1948)는 사람 그림의 상징적인 의미와 구조적인 요인을 모두 고려하여 투사적 그림에 심리학적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였다.

  마코버의 '사람 그림(Draw-A-Person: DAP)검사'와 사람 그림에서 일어나는 투사에 대한 연구는 '사람 그림 검사'의 임상적 적용에 관한 대부분의 연구들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고, 마코버는 정신분석적 이론에 입각하여 그림검사에 대한 "신체상(body-image) 가설"을 제시하였다.

  이 가설에서 사람 그림은 개인이 자신을 어떻게 지각하는가에 대한 표상이며, 어떤 의미에서 종이는 환경에 해당 되고 사람 그림은 바로 그림을 그린 자신에 해당된다. 개인의 감각, 지각 및 감정은 특정한 신체 부위와 연결되고 그 과정에서 신체상이 발달하며, 그림에는 이러한 신체상이 투사됨으로써 개인의 충동이나 불안, 갈등 및 보상욕구가 표현된다.

  반면 코핏츠(Koppitz, 1968)는 전통적인 정신분석이론 대신 자아심리학을 강조하는 설리먼(Sullivan)의 대인관계이론을 기반으로 하여, 그림을 통해 아동의 발달 단계와 대인관계능력을 탐색하고자 하였다. 또한, 아동의 그림은 아동의 정신적 발달 정도와 그림을 그릴 당시의 태도나 관심을 반영하며 이러한 요인들은 아동이 성장함에 따라 변화하게 된다고 보았다.

  디리오(Di Leo, 1970)는 유아기부터 후기 아동기에 이르기까지 그림의 발달과정을 연구하였는데, 다소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작업이었으며 아동의 그림을 예술이론, 인간발달과 성격이론에 연결시키려는 시도를 하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한편, HTP 또는 DAP를 응용한 투사적 그림검사들이 많이 개발되었는데, 대표적인 검사는 가족화(Draw-A-Family), 비 속의 사람 그림검사(Draw-A-Person-In-the-Rain, Draw-A-Child-In-the-Rain), 동물 그림검사(Drawings of Animals) 등을 들 수 있다.

2. 투사적 그림검사의 종류

 1) 사람 그림검사 및 관련 검사

  (1) 사람 그림검사(Draw-a-Person test): 마코버(1949) 등이 개발한 검사로 사람을 그려보도록 하고 사후질문 과정을 실시하여 성격 구조에 대한 다양한 정보(자기상, 신체상, 이상적 자기, 성 정체감 등)를 얻을 수 있다.

  (2) 집-나무-사람 그림검사(House-Tree-Person test): 벅(1948, 1964)이 개발하고 벅과 해머(1969)가 발전시킨 것으로 집, 나무, 사람을 그려보도록 하는 검사이다. 사람 그림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 외에 부가적으로 성격 구조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특히 나무 그림은 무의식적인 수준의 성격 구조를 드러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 색채화 검사(Chromatic or Color Drawings test): HTP 개발자와 사용자들이 발전시킨 것으로 먼저 연필로 HTP를 수행토록 한 다음 크레용으로 다시 그려보도록 하는 검사이다. 해머는 유채색 그림이 무채색 그림보다 성격에 대해 훨씬 많은 것을 보여준다고 주장하였으며, 특정한 색채가 과도하게 사용되었을 경우 그 의미에 대해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특정한 색채가 지니는 의미를 기계적으로 해석하거나 색채의 사용에 대해 과도하게 추론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며, 색채가 지니는 의미는 성별과 연령, 주관적인 경험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4) 빗속의 사람 그림검사(Draw-a-Person-in-the-Rain test): 빗속에 서 있는 사람을 그리도록 하는 검사로 그 사람이 현재 겪고 있는 스트레스의 양과 방어기제의 와해나 퇴행 없이 얼마나 이를 잘 다루고 있는가를 측정한다. 여기서 비는 스트레스를, 비의 질은 그 사람이 느끼는 스트레스의 양을 나타내며 스트레스에 대한 방어기제는 비에 대한 방어 즉, 우산이나 비옷, 혹은 나무로 상징되어 나타난다고 가정한다.

  (5) 동물 그림검사(Drawings of Animals test): 아동에게 자기가 원하는 어떤 동물이든 마음대로 그려보게 하는 것으로서 원초적인 측면의 자기구조(self-structure)를 파악할 수 있다.

  (6) 자화상 검사(Self-Portrait test): 자기개념과 신체상에 대한 부가적인 정보를 제공하여 주고, 문제를 명료화하고 치료를 계획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7) 부가적인 인물 검사(Additional Persons test): 사람 그림 혹은 자화상을 그려보도록 한 뒤 그 외의 다른 사람을 부가적으로 그려보도록 하는 검사이다. 목적에 따라 에스키모나 친구, 선생님 등 다양하게 변형시켜 실시할 수 있으며 주로 인물이 그려진 크기를 통해 중요한 타인의 존재나 자존감, 특정 인물에 대한 감정이나 생각을 알아보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타당도 검증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2) 가족화 검사 및 관련 검사

  (1) 가족 그림검사(Draw-a-Family): 피검자로 하여금 자신의 가족을 그려보도록 한 뒤에 그림 속의 인물들과 자신이 그린 그림에 대해 자유롭게 설명해 보도록 하는 것이다. 그림을 해석할 때 그림 전체의 형태(gestalt)를 중요하게 여겼고, 이는 특히 아동의 갈등에 대한 주요한 정보원으로서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2) 운동성 가족화 검사(Kinetic Family Drawing): 아동으로 하여금 자신의 가족을 모두 그리되 무언가를 하고 있는 내용을 그리도록 하는 검사이다. 이 검사는 그림 내 인물의 행동이나 움직임에 초점을 두게 되는데, 비운동성 가족화와 달리 아동의 지각이나 태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정보를 조금도 풍부하고 깊이 있게 제공한다.

  (3) 집단 그림검사(Draw-a-Goup): 집단의 구조와 그 안에서 아동의 적응을 평가하기 위하여 가족 이외 다른 집단의 사람들을 그려보도록 하는 검사이다.

  (4) 운동성 학교 그림검사(Kinetic School Drawing): 아동이 학교 상황에서 자신을 어떻게 지각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개발한 것이다. 아동에게 학교에서 자신과 선생님, 친구 한 명이 무언가를 하고 있는 그림을 그려보도록 하고 그림을 해석할 때는 학교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그리는지, 선생님이라 친구들에 대하여 아동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요소이다. 이를 통해 아동의 학교 적응과 또래 관계 등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다.

  (5) 비운동성 학교 그림검사(Akinetic School Drawing): 아동이 학교 생활을 어떻게 지각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검사로, 교실 그림을 그려보도록 한 후 그림의 내용에 대하여 질문을 하며 그림을 해석할 때는 교실 안의 친구들, 자기 자신, 선생님, 교실 안 사물들에 초점을 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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